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 How long does it take to become an expert in X?

2020. 5. 18. 05:40Health/Mind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는데 독자들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위해 #AskMeAnything을 열었습니다. 이번에 받은 질문 중에, 유난히 눈에 띄고 개인적으로 공감되는 내용이 있어 이렇게 블로그 포스트로 답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한다면 제일 이상적이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서 더 잘하는 쪽을 선택한 후 공부하고 있는데, 잘한다고 생각했던 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계속 노력을 해도 더 이상 좋아지지 않고 경쟁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재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21살부터 지금까지 계속 안 좋은 일들이 겹쳐 일어나고 저 자신의 부족함과 밑바닥을 보다 보니 슬럼프에 빠진 학부생인데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클레어 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발전하시고 학계와 산업계 양쪽에서 활약하시면서 내공을 쌓으시는 클레어 님께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답을 해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질문자님은 누구나 겪어봤을 고민(잘하는 것 vs. 좋아하는 것)을 하시다가, 결국 잘하는 것을 선택하시기로 했는데, 노력을 해도 과연 이게 정말 내가 잘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들어 이렇게 이야기를 터놓으시게 되었는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지인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일화를 통해 주니어 개발자에 대해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 성찰과 반성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에 발전이 없다"라고 했는데, 질문자님께서는 스스로를 돌아보시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파악하려는 의지가 있으시기에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제가 섣불리 어떤 분야가 더 전망이 좋으니 이렇게 해라,라고 말씀드리기보다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일반적인 학습 곡선 (Learning Curve) 의 형태 

Learning Curve (학습 곡선) x축은 경험, 즉 들인 노력과 시간을 나타내고, y축은 그에 따른 아웃풋, 즉 실력을 나타냄

 

개인마다 타고난 능력과 주어진 환경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학습 곡선은 S자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있는 분야에서 이 형태를 Sigmoid function이라고 하는데, 이에 관련해 재밌는 이야기는 따로 블로그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그래프를 읽는 방법은, 각각의 축을 보고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지 살펴보는 것인데, x축은 학습에 들인 노력과 시간의 횟수를 나타내고, y축은 그에 따른 아웃풋, 즉 전문성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기울기에 따라서 크게 세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 Phase 1. Slow beginning: 초기 단계에서 들인 노력에 비해 아웃풋인 실력의 향상이 더딘 상태, 느린 초기 배움 단계.
  • Phase 2. Steep acceleration: 기초가 쌓인 상태에서 들인 노력에 비해 실력의 진전이 빠르게 보이는 상태, 배움의 가속 단계
  • Phase 3. Plateau: 추가적으로 노력을 해도 실력의 향상이 초기의 느린 배움 단계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상태, 학습의 정체기   

로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질문자님의 단계는 Phase 1으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아웃풋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답답함과 자기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응용 수학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새로 분야를 바꾸면서 초기에 생소한 단어의 뜻을 몰라서 구글 검색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디버깅을 하는데 툴이 익숙하지 않아 튜토리얼을 보고 따라 하며 개발 환경 세팅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초기 배움 단계에서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하고 나면, 그 이후에 배움의 가속 단계에서 여태까지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님께서 노력한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하시기보다는, Phase 2를 위해 튼튼한 바탕을 구축한다고 생각하시며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Phase I를 견뎌나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 단계에서 머무는 기간과 그래프에서 최고점 (학습의 정체기에 도달했을 때 찍을 수 있는 정점 y값)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들은 일주일 동안 Phase 1에서 고생해서 금방 넘어가는데, 왜 나는 일 년이나 걸리나... 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학습 곡선 주기와 형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진행 사항을 점검하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저도 매일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 배워가는 과정이라 전문가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만, 초기 더딘 학습 단계가 얼마나 답답하고 실망스러운지 이해하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추가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아래 코멘트로 남겨주세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