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과학 석사 수료 회고

2021. 12. 15. 12:22Tech & Science/CS

총 49학점 취득하고 평점 4.0으로 마무리.


2년간의 긴 여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석사 입학하기 전에 쓴 글을 보니 1) 전공 필수 과목 A, 2) 관심 분야 랩에서 연구 참여하고 논문 출판, 3) 동기들과 교류 이렇게 세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모두 이뤄졌다.

첫 번째로, 전공 필수 과목에서 총 학점 4.0 졸업하는 것은 나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성적 자체가 엄청 중요하다기보다는 내가 학부 생활에 지니지 못했던 "끈기"와 "성실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어서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9-2021 수료한 컴퓨터 과학 대학원 수업

실제로 어떤 점이 변했느냐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외적인 방면(관찰될 수 있는 것)과 내적인 방면(스스로만 알 수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외적인 방면에서, 수업이나 오피스 아워에 참여하는 빈도가 확연히 늘어났다. 과거에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거나 몸이 안 좋으면 무조건 수업을 안 갔었다. 대인기피증이 심하기도 했었고 내 능력 밖의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면 한계를 인정하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혼자 끙끙대면서 겉으로는 다 아는 척을 하곤 했었다. 그렇다 보니 더욱 남들이 보는 나와 실제 사이에 큰 갭이 생겼고 그 거리가 넓어질수록 부담스러워졌다. 그렇게 학부 생활을 실망스럽게 겨우 끝내고 나서야, 나는 대학원에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대충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들은 실제로 잘 못 알고 있거나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라서, 아예 모른다고 가정하고 아주 낮은 자세로 배워나갔고, 그렇게 파고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내 부족함과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보다 더 잘 아는 교수님과 조교님께 뻔뻔할 정도로 자주 질문을 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질문들은 당연하지만 기초적인 중요한 개념들이었고 매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어느 정도 기본 개념이 연결되어서 돌이켜 생각해도 꽤 괜찮은 질문과 아이디어를 배운 내용을 토대로 공유하게 되었다.

내적인 방면에서,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정립함에 따라 더이상 여기에 적합하지 않은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배움과 성장, 나눔과 교류, 건강, 지속가능성, 상호 존중, 열린 마음 등 내가 가장 우선시하는 삶의 양식을 생활의 중심에 두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시간과 정신을 갉아먹던 행동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서 조금 어색하고 서먹할 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와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물론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집중할 것인지 계획하고 그에 맞게 실행하고 있다고 해서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운이 있고 의식하고 있는 동안에는 위에 나열한 가치들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석사 기간 동안 감사하게도 초반에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인 데이터에 관해서 마음껏 관련 논문을 읽고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실험 결과를 도출하고 분석하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깊이 몰입해서 교수님과 선배의 지도하에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확실히 나는 여태까지 나온 현재 방법들을 살펴보고 여기서 갭을 발견하고 앞으로 어떻게 그 간극을 좁힐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합성해 나가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다. 아예 획기적인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거나 학계를 뒤엎을 충격적인 패러다임을 만들 만큼의 배짱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내 성향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직접 리서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디자인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학부 때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생겼다. 아무래도 학부 때 친구들은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같이 놀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기억들만 있는데, 석사 때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도미노 피자를 시켜 넷이서 나눠먹으며 9시간동안 페이퍼 편집을 하고 제출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고생한 기억들이 전부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의 한계를 목격해서인지 더 편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이가 많다. 한편으로는 석사를 하는 동안 나를 비롯한 학생들이 코로나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아서 동기들 친목이 더 특별한 것 같다.

이렇게 짧게 컴퓨터 과학 석사 수료를 하고 시작 전에 세운 목표와 현 상황을 비교해보고 느낀 점을 회고해보았다. 앞으로 남은 일이 몇가지 더 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까 마음이 가벼워져서 잘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위를 받고 나서 다시 또 전반적인 평가와 앞으로 계획에 대한 내용을 더 작성해야지.